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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이사


떠나야 할 날을 정했습니다. 앞으로 5일 남았습니다.
하지만 어디로 떠날지 정하지는 않았습니다.

7년이란 시간을 함께한 공간이라 정리할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되도록이면 모두 다 버리고 갈 생각인데 무엇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막막합니다.
책과 옷, 컴퓨터와 스텐드 그리고 컵 한 개와 전기 포트만을 챙기려 하는데 큰 상자로 열 상자나 됩니다. 책은 3분의 1을 버렸고 옷도 절반을 버렸는데도 흘려보낸 시간을 직접 확인 시켜주는 듯 합니다.

떠나는 것이 유쾌하지만은 않습니다.
새로운 시작이 두렵기도 하지만 떠나는 것이 힘들고 괴로운 것들을 피하기 위한, 도망치는 비겁한 사람으로 느껴짐이 강하기 때문 입니다. 이런 기분이 드는 건 앞으로에 대한 확실한 계획이 없고 이 곳에서의 추억을 정리할 용기가 없기 때문 일것 입니다. 

추억에 '안녕'하고 쿨하게 헤어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합니다. 부질 없는 생각이란 걸 잘 알지만 그래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환경에, 상황에 많은 영향을 받는 사람이기에 떠나면 바뀌리라 기대하고 있을 뿐 입니다.

아마도 계획에 대해선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알곤 있지만 하기 싫어 외면하고 있지 않을까 합니다. 

떠나면서 정리가 필요하겠단 생각에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생각처럼 쉽게 정리되지는 않습니다.
썼다 지웠다 세 번째 반복하면서 어쩌면 살아가는 동안 정리할 수 있는 것들이 많지 않겠다란 생각만 듭니다. 애써 의미를 부여하지만 현재는 과거의 얼굴이란 사실만 인정하게 됩니다.

어쨌든 이렇게나마 노력을 합니다.
지난 날들에 대한 인사로, 새로운 시작에 대한 예의로.


그 동안 수 많았던 표정을 묵묵히 지켜 봐준 것에 대해 경의를 표합니다.
행복한 시간을 나눌 수 있게 해준 것도, 괴로운 시간을 지켜준 것도,
비록 정해진 수순이 아닌 갑작스런 떠남이지만 그럼에도 말 없이 원하는 방향으로 결정할 수 있게
해주는 것에 이렇게 감정을 이입 할 만큼, 힘들게 지난 날을 포장할 수 있게 기꺼이 대상이 되어 주어
스스로 옳은 결정이라 위로할 수 있습니다.

어쨌거나 지금의 내 모습이 있게한 시간들 이었습니다.
과정을 살펴보면 다양하지만 결과론 적으론 만족하지 않음에 그저 그렇지만, 그렇기에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하겠습니다. 반복하지 않는 시간들로 채워 지난 후 돌아보며 만족하지 않은 결과론의 생각이 잘못 되었음을 인정 하겠습니다.

하지만 사진으로 남겨 추억하지는 않겠습니다.
언젠가 후회할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미래의 어느 시간보다 지우고 싶은 맘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냥 이렇게 편지로 대신 합니다. 

생활에 필요한 모든 걸 갖고 있었습니다.
시간의 흐름에 취향이 바뀌어 일관성은 없었지만 무엇을 찾던 다 내어줄 만큼이었습니다.
대부분은 다 버리지만 몇은 꼭 필요한 이들에게 전달합니다. 가능하면 버리지 않고 인계하려 했었다는 사실은 기억해 주길 바랍니다.

더 이상 할 말이 생각나지 않지만 아쉬움에 끝맺음을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끝내야 함을 압니다. 

염치 없지만 마지막 부탁을 합니다.
'내가 후회하지 않게 날 밀어 버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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